10월 7일 화요일 아침 10시,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현관을 나섰다. 장인어른께는 10시반까지 집 앞으로 도착하겠다고 말씀드렸다.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니까 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를 생각이었다.
주차장까지 내려와서 짐을 뒷좌석에 싣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지갑하고 자질구레한 소지품을 넣어 다니는 파란색 PANAM 크로스백이 없었다. 집에 두고 온 것이다. 아내가 웃었다. 화를 내지는 않았다. 부랴부랴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문을 열고, 가방을 집어 들고, 다시 내려왔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부쩍 많아졌다. 한 번에 출발하는 경우가 드물다. 건망증이 생긴 듯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아내와 번갈아 가면서 뭔가를 까먹는다. 주유소 들를 시간은 날아갔다. 주유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바로 장인어른 댁으로 향했다.
사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여섯 명이 함께 가기로 계획한 건 아니었다. 리조트를 예약할 때만해도 우리 가족 넷이서만 가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출발 며칠 전에 아내가 불쑥 부모님도 모시고 가자고 제안했다.
순간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지난번 세부 여행 다녀온 후 아내는 다시는 엄마랑 여행 못 갈 것 같다고 낙담했었다. 장모님이 여행 중에 많이 힘들어하셨기 때문이다.
아내가 그 여행에서 여러가지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순간순간 즐겁고 기쁜 순간들도 많았지만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게 건강한 사람도 쉽지 않은데, 어머니가 여러가지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았다.
아내가 용기를 낸 것이다. 당연히 아이들은 반겼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간다니 좋아하며 들떠 있었다. 나도 반가웠다. 아내가 망설이는 게 이해되기는 했지만, 그럴수록 더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도 조금 몸이 불편하셨다. 하지만 결혼 전에 우리는 늘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다녔다. 거동 불편하신 분을 모시고 그렇게 다니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그게 불편하거나 번거롭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함께 다닐 때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셔서 우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고, 너무 당연한 일이라 여겨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가족들 모두에게, 그리고 특히 조카들에게 지금도 할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들 중에서 함께 여행 다닌 기억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제주도, 강원도, 전국 곳곳에서의 수많은 추억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장모님은 아버지와는 또다른 상황이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걸 많이 힘들어하신다. 나도 내가 너무 무리한 주장을 하는가 싶어 조금 망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아내가 결심을 했다.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어쩌면 큰 도전이었다.
장인어른 댁에 도착했다. 장인어른은 이번 여행을 아주 기대하고 계셨다. 장모님도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우리 차는 7인승이지만 보통 때는 맨 뒷줄을 접어서 5인승으로 다닌다. 6명이 타려면 맨 뒷줄에서 한자리를 접어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앞 자리에 운전석 조수석 두 명, 가운데 자리 세 명, 뒷자리 한 명. 이렇게 여섯명이 탈 수 있다.
뒷자리가 제일 불편할 텐데 막내 송하가 흔쾌히 나섰다. 기특하고 고마웠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주 의젓하고 대견하게 행동한다. 아빠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다. 가운데 자리에는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소은이가 앉았다. 아내가 조수석, 나는 운전석이고 송하가 맨 뒷 줄에 혼자 앉았다. 불편하지 않냐는 말에 자기 혼자 타서 기분이 좋다고 웃어 주었다.
전날 밤 미리 네비게이션으로 확인했을 때는 3시간이 채 안 걸렸는데 막상 출발 직전에 다시 찍어보니 4시간이 넘게 나왔다. 이번 추석 연휴는 역대급으로 긴 연휴다. 추석 귀성객 때문에 차가 밀릴 것 같았지만, 연휴가 길어서 오히려 사람들이 분산될지도 모른다고 혼자 기대를 했다. 하지만 어제밤의 잠깐 설렘은 역시 헛된 바램이었다.
출발하고 처음에는 외곽순환도로로 힘차게 달렸다. 그러다가 남양주쯤에서 양양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국도로 빠졌다. 고속도로가 많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아내가 약간 낯설다고 했다. 사실 우리는 이 길로도 여러 번 다녔다. 아내는 보통 여행갈 떄 마음이 편해지는지 옆에서 자주 존다. 그래서 아주 많이 다닌 길을 가끔씩 낯설어하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왠일인지 안 졸고 있으니 이 길이 처음 보는 길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팔당대교가 보였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판교에서 팔당댐을 지나 양수역까지 가는 왕복 100km 짜리 자전거 코스에서 마지막 난코스로 꼽히는 바로 그 다리다. 자동차 도로 옆으로 아주 좁다란 자전거 길이 있는데 자전거 두 대가 마주칠 때면 서로 간신히 지나갈만큼 좁은 길이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잔뜩 흐렸다. 비가 오는데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저 멀리서 자전거 복장을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남자 넷, 여자 둘. 전형적인 자전거 동호회의 성비였다.
비가 이렇게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에도 힘차게 페달을 밟는 그들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한번은 잔뜩 흐린 날씨에 자전거 타러 나갔다가 빗줄기가 갑자기 거세지면서 흠뻑 젖은 적이 있었다. 걸어 가는 것보다 자전거로 다니는 것은 당연히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비에 젖는 속도도 아주 빠르다. 보통 시속 20~30km 정도로 달리니까 걷는 속도인 4km보다 최소 5~6배 속도로 빠르게 비에 젖는다.
팔당대교 다리 아래 멀리로 새롭게 공사 중인 다리가 하나 더 보였다. 새로운 다리를 만들고 있다. 나는 저게 자전거 전용 다리인 것 같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팔당대교를 건너는 이 구간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힘든 코스다. 경사도 심하고 구불구불해서 절반쯤은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간다. 그래서 나는 팔당대교 옆으로 공사 시작하는걸 보고 마음대로 자전거 전용 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동차용 도로라고 보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아서이기도 하고 자전거 전용 도로도 많이 만드는 판에 다리하나쯤 못 만들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자전거 전용 다리라는 내 말에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나중에 찾아 보니 그곳은 제 2팔당대교 신축 공사장이었다. 자전거 전용 다리는 아니고 팔당대교의 교통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인데 그래도 아마 옆으로 자전거 전용로를 만들면 라이더들에게 아주 고마운 다리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제2팔당대교는 2019년 착공하여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총 공사비 1,076억 원을 투입해 1.6km의 교량을 왕복 2차선으로 건설하며, 2025년 8월 기준 공정률은 85%다. 다만 고압 송전선로 이설 문제로 200m 구간의 공사가 중단되어 당초 예정보다 늦춰질 전망이다. '제2팔당대교' 또는 '신팔당대교'는 가칭이고, 하남시는 도미설화가 전해지는 지역 정체성을 담아 '도미대교' 라는 명칭을 채택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 도미설화는 다음과 같다. 백제 개루왕은 아름답고 정절이 굳은 평민 도미의 아내를 탐하여 남편 도미를 가두고 그녀를 범하려 하였으나, 도미의 아내는 뛰어난 지혜를 발휘하여 왕을 속이고 정절을 지켰다. 이에 분노한 왕은 도미의 두 눈을 뽑아 강물에 띄워 보냈는데, 아내는 왕의 곁을 도망쳐 나와 강가에서 기적적으로 남편과 재회하는 데 성공하였다. 두 부부는 이후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로 망명하여 가난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지금 다리가 건설 중인 도미 나루터이다.
다리를 건너 국도 6호선을 따라 양평 방면으로 들어섰다. 강변을 끼고 산을 뚫고 지나가는 터널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봉안터널을 시작으로 팔당 1호, 2호, 3호... 터널을 지날 때마다 숫자가 올라갔다. 모두 여섯일곱 개쯤 되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길이 막혀서 출발한지도 벌써 두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중간에 홍천 화로구이 촌이 보였는데 아내가 점심부터 고기 구워 먹는건 좀 그렇지 않냐고 그냥 휴게소에 들러서 간단히 먹고 가자고 했다. 나는 화로구이도 괜찮겠다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될 것 같기도 해서 아내 의견에 동의했다.
적당한 휴게소가 나오면 바로 점심을 먹을 계획으로 도로변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나오는 휴게소마다 너무 작고 허접했다. 근사하고 북적거리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상상했던 우리 눈에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이쪽의 휴게소나 식당들이 아마도 서울양양고속도로 때문에 폭망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국도를 이용하는 차량이 줄었을 테니. 아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지나칠 때마다 보이는 휴게소가 거의 모두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었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낡은 간판에 주차장에는 풀이 자라고 있었다. 문득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첫 장면이 떠올랐다. 초반부에 옛날 테마파크의 흔적들로 지금은 폐허처럼 변한 곳들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식당은 고사하고 화장실이라도 이용하려고 일단 급하게 보이는 휴게소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는 화장실조차 찾기가 어려웠다. 여기저기 헤매다 겨우 찾아 들어가보니 남자 화장실은 이용이 가능했지만, 여자 화장실은 아예 폐쇄되어 있었다.
편의점이 하나 있어서 음료수라도 사고 화장실을 이용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연휴라서 그런지 편의점도 문이 닫혀 있었다. 웃긴 건 입구에 '영업 중'이라는 표지판을 세워뒀는데, 유리문에는 '오늘 쉽니다'라고 또 붙여놓았다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차에 올랐다. 제대로 된 휴게소를 찾아야 했다.
※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6번과 44번 국도의 휴게소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경춘로 남양주~춘천 구간 휴게소의 85% 이상, 동홍천IC 서쪽 휴게소의 90%가 폐업했다. 양평군 청운면의 클린턴휴게소, 용머리휴게소 등 폐업한 일부 휴게소들은 10년 이상 방치되며 폐허로 변했고, 이 과정에서 변사체까지 발견되는 등 우범지대화라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한참을 더 가다가 원주 쪽으로 빠지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거기로 가면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게 아닐까해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원주 쪽으로 빠져서도 계속 국도였다. 배도 고프고 화장실도 급하고 초조함이 극에 달할 무렵, 드디어 제대로 된 휴게소가 보였다.
화양강 휴게소였다. 제법 규모도 크고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음식 파는 곳도 보였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냉큼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화장실부터 찾았는데 여자 화장실은 줄이 길게 늘어 서 있었다. 화장실 설계는 남과 여를 같은 면적으로 하면 안된다. 소변 볼 수 있는 장소가 동일해 지려면 여자 화장실을 최소 두배 이상 넓게 지어야 균형이 맞는다. 특별히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상식적으로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여자 화장실에 길게 줄을 늘어서 있는걸 보면 늘 답답하다.
여자들 중에 특히 너무 오래 사용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다고 아내가 얘기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편하게 해주는건 우리가 세금 내는 최소한의 이유가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자의 특혜를 한껏 누리고 먼저 볼일을 마치고 나왔는데 휴게소 뒷편으로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들고 왔는지 손에 과자를 들고 있었다.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었다.
가보니 제법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강과 산, 그리고 작은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흐린 날씨였지만 오히려 운치가 있었다.
허접한 휴게소를 찾느라 고생했는데, 알고 보니 이런 보물이 숨어 있었다. 화양강 휴게소는 뷰 맛집이라고 소개되기도 하는 꽤 유명한 휴게소라고 한다.
옆으로 식당이 붙어 있어 안에 들어가 분위기를 살폈다. 메뉴를 보니 라면이랑 돈까스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 뷰는 멋졌지만 식당은 그저그랬다. 메뉴가 너무 단촐했다. 우리 가족의 다양한 식성을 만족시키려면 이정도로는 어림없었다.
아내가 제안했다. 여기서 그냥 간단히 군것질만 하고 바로 숙소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목적지까지 1시간 남짓 남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닭꼬치에 감자랑 옥수수, 소떡소떡 그리고 핫도그를 하나씩 샀다. 배가 고팠는지 차로 돌아가면서 거의 다 먹어 치웠다. 옥수수만 몇 개 들고 다시 출발했다. 옥수수가 특히 너무 맛있었다. 아내가 자기는 원래 옥수수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기 것은 특별히 맛있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가 말했다. 이런 데서 파는 옥수수는 원래 뭔가를 넣는 것 아니냐고. 아내가 맞다고 했다. 달게 하는 걸 넣는다고. 내가 사카린이냐고 물으니 맞다고 했다. 정말일까? 아무튼 너무 맛있었다.
※ 휴게소 등에서 파는 옥수수의 강한 단맛은 주로 사카린 계열 감미료(뉴슈가, 신화당 등)를 설탕과 함께 사용한 결과다. 사카린은 설탕보다 수백 배 강한 단맛을 내는 합성 감미료로, 과거 유해성 논란이 있었으나 현재는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밝혀져 식품첨가물로 허용되고 있다.
휴게소에서 요기도 하고 기운이 나서 힘차게 달렸다. 미시령 고개를 넘어 드디어 델피노 리조트에 도착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비가 계속 부슬부슬 내려서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다.
체크인을 하는데 다행히 8층에 방이 있다고 했다. 왜 8층이 다행인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속초 시내랑 골프장이 보이는 전망이라고 했다. 원래 여기는 울산바위 전망으로 유명한 곳인데, 아마 그쪽은 다 마감이 된 모양이었다.
방에 들어가 소파에 앉으니 긴장이 풀리며 기분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버님과 어머님도 아주 만족스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라 설악산이나 다른 관광지를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의논 끝에 시장에 가기로 했다. 속초에 오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들르는 속초 중앙시장. 비 오는 날이면 거의 매번 찾게 되는 곳이다. '속초관광수산시장'이라고도 불리는데, 처음에는 두 곳이 서로 다른 시장인 줄 알고 약간 헤맸는데 결국 같은 곳이었다.
※ 정식 명칭은 '속초관광수산시장'이며, 속초중앙시장으로도 널리 불린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큰 상가 건물과 전문화된 골목 시장들이 어우러진 대형 전통시장으로, 동해안의 신선한 수산물과 지역 특산물이 풍부하다. 청과골목, 순대골목, 젓갈어시장골목, 닭전골목 등 품목별로 전문화되어 있으며, 특히 만석닭강정을 비롯한 닭강정 가게들과 오징어순대·아바이순대를 파는 순대 골목, 그리고 지하 회센터의 싱싱한 활어회와 건어물 등이 관광객들에게 가장 유명하다.
시장 가기 전,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내와 자쿠지(Jacuzzi) 앞에 편하게 앉으니 긴장이 조금 더 풀리시는 것 같았다. 리조트 회원권을 사서 충분히 이용 못한 아쉬움을 느꼈었는데 최근에 가족들과 몇번 여행을 하면서 그런 아쉬움들이 많이 사라졌다. 작년에는 미국에서 온 조카들하고 온 가족이 여기서 숙박을 하기도 했다. 4대에 걸쳐 총 15명이나 되는 대 식구가 방 3개를 잡아서 모두 같이 묵었다.
방 하나에 작은 방들이 3개씩, 거기에 화장실도 각각 3개씩 있어서 실제로는 방이 9개인 셈이다. 호텔에서 일하는 조카 주영이가 자기가 다녀 본 호텔 중에 가장 멋지고 인상적인 장소였다고 했다. 삼촌이랑 숙모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아는 녀석이다.
아이들은 본인들이 이미 중학생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듯한 행동을 했다. 귀여운 녀석들 같으니라고. 이젠 여중생이라고 가끔 어른처럼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이 저러는 모습을 보고 있는 순간이 가장 좋다.
아빠랑 같이 목욕할 때도 있었다는 사실을 이젠 까마득히 잊었겠지만 여전히 우리 딸들은 아빠에게 격이 없다. 우리 아이들만큼 아빠에게 정감있게 대해 주는 딸들이 또 있을까 싶다.
※ 소노 델피노 리조트 중 최상위 브랜드인 '소노펠리체 델피노' 동은 온천수 자쿠지로 특히 유명하다. 2021년 10월 22일에 그랜드 오픈한 이 동은 East 타워 120실과 West 타워 91실의 전 객실(총 211실)에 실내 스파룸이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기존 델피노 시설들이 일부 객실에만 자쿠지가 있던 것과 달리, 모든 객실에서 자쿠지를 즐길 수 있도록 차별화한 것이다.
리조트를 나와 시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비가 내려서 그런지 10분이면 도착하는 시장이 네비게이션 기준으로 30분이나 나왔다. 차가 엄청 밀리는 모양이었다. 가보니 입구까지 한참 차가 늘어서 있었다. 주차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우산을 써야 할지 애매했는데, 시장에서 우산 들고 다니기 너무 번거로울까 봐 그냥 모자로 때우기로 했다. 약간 후회스러웠다. 비가 제법 내려서 시장으로 빨리 후다닥 들어갔다. 만석닭강정 분점쯤 되어 보이는 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기동력을 구사하기 어려운 일행을 이끌고 돌아다니기에는 아주 난코스였다.
이리저리 헤매다 우리 여인네들의 최애 간식인 뻥튀기를 발견했다. '속초 바삭튀밥'이라는 명칭의 물건인데 전에도 들러서 한 보따리 샀었다. 전국 택배라고 써 있었는데 따로 시켜본 적은 없다. '현미 누룽지칩'이라고 붙어 있는데 뻥튀기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고 정겹다.
만석닭강정을 하나 살까 했는데 줄이 너무 길었다. 아까 분점에는 그리 줄이 길지 않았다 싶어서 일단 미뤄뒀다. 그러다 결국 못 사고 말았다. 늘 느끼는거지만 여행지에서 나중은 없다. 땡길 때 실행에 옮겨야 한다.
대신에 오란다를 한 상자 샀다. 어떤 맛인지 가물가물한데 달달하면서 맛있어 보이기는 했다.
※ 뻥튀기는 쌀, 옥수수, 감자 등의 곡물을 압력과 열을 이용해 튀겨 낸 과자다. 밀폐된 용기에 재료를 넣고 가열하여 압력을 높인 뒤, 뚜껑을 갑자기 열어 압력을 급히 떨어뜨리면('뻥' 소리) 곡물 내부의 수분이 팽창하며 재료가 수 배로 부풀어 오른다. 쌀로 만든 뻥튀기는 '튀밥' 또는 '팽화미(膨化米)'라고도 한다. 한편, 오란다는 곡물 알갱이(퍼핑콩 등)를 물엿이나 조청으로 굳혀 만든 강정류 과자이다. 이름은 네덜란드를 일컫는 일본어 'オランダ(오란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서양 와플 등이 동양식 쌀강정 형태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이 명칭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번에 막내가 감동했던 고구마떡 집을 찾았는데 어딘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대충 다녀서 나올 정도로 좁은 곳이 아닌데 너무 무턱대고 다닌 것 같았다. 막내에게 조금 미안해서 나중에 제대로 검색해서 찾아가 보자고 했는데 결국 못 갔다.
맛있어 보이는 명란젓을 듬뿍 사서는 시장을 빠져 나왔다. 오징어를 살까 했는데 마땅치 않아서 코스트코로 미뤘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배도 고프고 해서 빨리 시장을 벗어나는게 나을 것 같았다.
저녁 식사 메뉴로는 생선회가 당첨됐다.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어차피 오늘 배 타고 나가서 잡지는 않겠거니 했다.
후보지는 세 곳이었다. 하나는 가성비가 좋은 곳, 하나는 물회 전문점, 나머지 하나는 인테리어가 깔끔한 전형적인 횟집. 아내의 선택은 세 번째였다. 이름은 코리아 횟집. 횟집 이름으로는 좀 안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입구에서 점잖아 보이는 아저씨가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검색에서 사장님과 직원들이 친절하다는 평이 많이 있었는데 이 아저씨 얘기인가 싶었다. 일단 첫인상은 좋았다.
그런데 2층으로 올라가 주문을 하는데 주문 받는 분은 좀 이상했다. 우리는 특대 사이즈를 주문했다. 가격이 25만원이나 되고 가장 큰 사이즈였는데 양이 부족할 거라고 했다. 주문은 그렇게 하셔도 상관없는데 여섯 명이 드시기에는 양이 부족할 거라고.
가격표 옆에 양 표시를 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우리가 소·중·대·특대 중에서 가장 큰 걸 선택했는데 양이 부족하다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 게다가 일반보다 더 비싼 자연산으로 주문한 건데...
친절하게 "6명이시니까 대 하나에 소 하나 이렇게 시키셔야 양이 맞아요"라고 말해줬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아니면 1인분 단위로 판매를 하거나. 돈 아끼려는 마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생선회에 꽂혀서 이런 바닷가는 물론이고 집 근처 횟집도 자주 가고 있다. 몇 년 전 어머님 생신 때였다. 한우 고깃집인데 기본 요리로 회가 한 조각 나오는 걸 먹어보더니, 그 이후로 회에 아주 사족을 못 쓰고 있다. 덕분에 나는 아주 신이 났다. 그전에는 바닷가에 가서도 고깃집 찾아다니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제부도에 간 적이 있었다. 온통 조개구이집에 횟집이 즐비한데 우리는 그 섬 전체를 뒤져서 고깃집을 간신히 찾아내, 별로 맛도 없는 고기를 구워 먹었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그러던 아이들이 이제 회를 저렇게 좋아하다니. 참 세월이 많이 흘렀다.
※ 당시(약 10년 전)만 해도 제부도에서 고깃집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웠으며, 섬 대부분이 조개구이집과 횟집 위주였다. 한 시간 넘게 헤매야 간신히 고깃집을 찾을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검색 결과에 따르면 현재 제부도에는 삼겹살·오겹살 전문점, 한우 정육식당 등 순수 고기 전문 식당만 최소 6~7곳 이상이 확인된다. 이는 당시의 고생이 무색할 정도로 식당 구성이 다양해졌음을 보여주지만, 실제로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영업을 제대로 하는지는 직접 방문하여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나오는 스키다시가 꽤 맛있었다. 메인 요리도 퀄리티가 아주 훌륭했다. 특히 해삼하고 멍게가 맛이 좋았는지 나중에 추가로 시킨 해삼과 멍게 한 접시까지 순식간에 비웠다.
※ 흔히 '스끼다시'로 불리는 용어의 일본어 원어는 '츠키다시(つきだし)'이다. 일본 요리점에서 주문한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제공되는 간단한 기본 안주를 뜻하며, '오토시(お通し)'와도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한국의 횟집에서는 이 용어가 회를 주문하면 함께 나오는 전복, 해삼, 멍게 등 다양한 해산물 및 전채 요리들을 통칭하는 말로 변형되어 사용된다. '스끼다시', '쓰끼다시' 등의 잘못된 표기는 물론, 특히 일본어와는 전혀 관련 없는 '찌깨다시'와 같은 오용 표현으로 불리는 경우도 흔하다.
아까 그 직원 말대로 회 양이 조금 부족하기는 했다. 아이들이 정말 어른 1인분 이상을 먹는다. 덕분에 튼튼하게 자라주고 있는 것 같아서 아주 듬직하다.
아이들도 잘 먹었지만 어른들도 못지 않았다. 장인어른이야 홍할머니와 더불어 '진주 명석면 출신 양대 산맥'이시니까 두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두 분과 함께 식당에 가면 언제나 돈이 아깝지 않다고 감탄하곤 한다. 잘 드시기도 하지만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어머님은 '이것 좀 드세요' 하면 '안 먹는다'고 말씀하시고는 많이 드신다. 일단 안 먹는다고 얘기하시는 이유는 뭔지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맛있게 잘 드신다. 송하랑 비슷한 점이 약간 있다.
저녁도 든든하게 먹었고 어둑어둑해져서 리조트로 돌아왔다. 비가 부슬부슬해서 야외 활동은 못 했지만, 시장 구경과 맛있는 저녁 식사로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
리조트에 도착하자 아내와 아이들이 잠깐 무언가를 사러 다녀오겠다고 했다. 예상되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아는 척할 수는 없었다. 연기력이 부족한 게 너무 티가 났을 것 같았다.
이런 곳에 와 보면 막상 케이크 사는 게 쉽지 않다. 언젠가 한번 아내 생일 케이크를 사려고 한참 헤맸던 기억이 있었다. 제주도였던가? 강원도였던가 가물가물한데, 꽤 오래 헤매서 간신히 케이크를 준비했었다.
잠시 후 음악 소리와 함께 케이크가 도착했다. 어디서 그런 귀여운 녀석을 골라 왔는지...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멀리까지 가서 구해 왔다고. 미리 전화해서 문 닫지 말아달라고 특별히 부탁까지 해서 구해 온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생일 선물로 잔뜩 기대했던 아이템의 부재였다. 지난번 에펠탑 밑에서 속삭이던 송하의 목소리... "아빠, 내가 아빠 생일 선물로 사줄게"라고 했던 그 레이저 포인터. 조경철 천문대에서 처음 봤고 에펠탑 밑에서 손에 넣을 뻔하다가 아내의 쇼핑 저지 필살기에 걸려 좌절된 그 영롱한 레이저 포인터...
송하가 그동안 너무 공부에 힘들어서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그 대신 핸드크림을 사주었다. 향기는 아주 좋았지만 레이저에 대한 아쉬움은 아련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송하는 언젠가 나에게 그걸 꼭 사줄 것이라 믿는다. 소은이도 나에게 약속했다. 이번에 경황이 없어서 못 가져왔는데 집에 가서 꼭 사준다고 했다. 하하.
엄마는 스위스에서 내가 자기 생일 선물을 못해 주었기 때문에 그냥 생략했다고 말했다. 그래. 이제 우리는 생일 선물 생략할 때 되었을 수도 있다. 평소에 자주 서로 주고받으니까... 생각 날 때 수시로 하자.
"연중 생일 파티와 선물 교환 방식으로 전환"
짧지만 임팩트 있는 생일 파티를 끝내고 TV를 켰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같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기는 늘 쉽지 않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마땅치 않아서 핸드폰을 TV에 연결하고 유튜브를 틀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조용필이 난리였다. 어렴풋이 들은 것 같기도 했는데, 추석 연휴를 맞이해서 특별 공연을 한 모양이었다.
일단 공연장 분위기가 아주 신나 보였다. 고척돔이라고 하던데 야구 볼 때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경기장까지 관중이 다 내려앉아서 그렇게 보였던 것일 수도 있다.
가족 단위 관객이 많아 보였고, 젊은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공연에 나오는 노래를 내가 거의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내도 같은 얘기를 하면서 신기하다고 했다.
가물가물한 노래도 있었는데, 특히 '잊혀진 사랑'이라는 곡은 정말 대박이었다. 처음에는 살짝 낯설었는데 한 바퀴 돌고 두 번째 돌아갈 때쯤에는 완전히 익숙해져서 더듬더듬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그 이후로 완전히 이 노래에 빠져서 거의 하루에 몇 번씩 듣고 있다. 자막에 '조용필 콘서트의 필수 떼창곡'이라고 하는 글귀를 보았는데 역시 그랬다. 공연장에서 부르면 정말 미치도록 신날 것 같았다.
무엇보다 흐뭇한 순간은 어머님도 노래를 줄줄 따라 부르시는 장면이었다. 아내가 감격해하는 표정으로 가만 보고 있길래 빨리 동영상으로 찍으라고 말했다. 소중하게 간직해 둘 가치가 있는 아주 귀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조용필이 가왕은 가왕인 모양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가족들을 환호와 감동의 순간으로 금방 데려다주었다.
아침이 밝았다. 정말로 밝았다. 일기 예보로는 많은 비는 아니어도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비 올 날씨로 보이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는 날씨였다. 내 생일을 전후해서 이렇게 비가 자주 온 건 정말 기억에 희미했다. 아내에게 내 기억에 생일에 비가 온건 태어나서 거의 기억에 없다고까지 강력하게 주장했다. 여름 다 지나서 화창해야 할 날씨에 비가 계속 오니 짜증이 섞여서 그런 무리수를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 기상청 과거 일별 자료를 근거로 1968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58년간 서울의 10월 7일 강수 기록을 확인한 결과, 비가 온 날은 총 11회(1968년, 1970년, 1973년, 1985년, 1988년, 1996년, 2000년, 2005년, 2007년, 2014년, 2019년)이었다. 58년 중 47일은 맑거나 흐린 날씨였으므로, 비가 올 확률은 약 19% 수준이다. 즉, “태어나서 거의 기억에 없다”는 주장은 과장된 표현이며, 통계적으로는 대략 5년에 한 번꼴로 비가 오는 정도다. 다만 2025년 10월 7일은 추석 연휴 내내 이어진 강우가 겹치며 유난히 습한 날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날씨 요정이 있었다. 여름에 프랑스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가 "여기 혹시 날씨 요정 있으신가요?"라고 질문하자 아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실제로 아내와 함께 여행하면서 날씨 복은 정말 여러 번 누렸다. 일기예보 정도는 가볍게 극복하는 수준이다. 이번에는 정말 2박 3일 내내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다. 3일 내내 시장에만 갈 수도 없고, 가을 설악의 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그런데 아침부터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기운이 번쩍 나서 설악산 나들이에 나섰다. 하지만 그 전에 중요한 과제가 있었다. 아침 식사 메뉴는 두부집에 가고 싶어하는 아내의 희망과 짬뽕을 사랑하는 막내의 소망이 결합하여 짬뽕 순두부라는 절묘한 조합이 탄생했다.
식당도 깔끔하고 음식 맛이 기가 막혔다. 두부촌 특유의 시골식 두부에 솥밥이 기본으로 제공되고 사이드로 소은이가 좋아하는 오징어 순대까지 곁들이니 진수성찬이었다. 두부를 따로 덜어주는 것도 아주 맘에 들었다.
설악산 입구를 향해 힘차게 출발했는데, 화창한 날씨에 치러야 할 대가가 약간 있었다. 초입에서 주차장까지 한 시간 가량 정체가 계속됐다. 피곤하신데 덕분에 두 분께서 나른한 시간을 보내셨다. 여행 중 약간의 차량 정체는 여행객에게 체력 보충 효과가 있어서 나쁘지만은 않다.
내려서 걸어가라고 여러 식당과 주차장들이 유혹했고, 이번에 처음 본 장소로 기억되는데 '임시 주차장' 같은 곳도 있었다. 일부러 운동 삼아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이겠지만 우리 가족 구성으로는 무리였다. 진득하게 기다려서 소공원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꾸역꾸역 주차장에 진입했는데 주차장 표지에 'K 주차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소은이가 멀미가 날 지경이라고 했다. K-팝부터 K-드라마, 요즘은 K-뷰티까지, 바야흐로 K의 홍수인 시대다. 좀 된다고 너무 소비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도 가끔 한다.
그런데 'K 주차장은 아마도 A부터 시작하는 그냥 순서대로 붙인 표지 아닐까?'라고 덧붙이니 소은이가 '아~~ 옆에 줄(-)이 없는 걸 보니 K-시리즈는 아닌가 보네' 라고 마음을 가라 앉혔다.
안내하는 아저씨가 생각보다 아주 먼 곳으로 우리 차를 안내해주었지만, 꼼짝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차에서 내렸다. '어머니 다리가 불편하시다'고 좀 떼를 써볼까 하다가, 어차피 내려서 꽤 걸어야 한다 싶어서 참았다.
화장실에 들러야 했는데 여기도 여자 화장실 줄은 아주 길었다. 참고 그냥 일단 전진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조계종풍시원도량설악산문(曹溪宗風始源道場雪嶽山門)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관심 없어 보이는 아이들에게 한자씩 천천히 읽어줬다. '조계종의 기풍(風)이 처음(始) 시작된 근원(源)의 도량(道場)인 설악산의 문' 이라는 뜻이다. 설악산문이라니...설악산은 산 이름인데 절 이름처럼 써놓았다. 절 이름은 신흥사 아닌가?
※ 신흥사(新興寺)는 신라 진덕여왕 6년(652) 자장율사가 창건한 향성사에서 유래하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의 본사(本寺)다. 조선 인조 때(1644) 대화재로 절이 소실된 후, 영서·혜원·연옥 세 스님이 기도를 올리던 중 백발 신인(神人)이 나타나 현재의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세 가지 재앙(삼재: 물, 불, 바람으로 인한 재난)이 미치지 못하는 신성한 곳"이라고 일러주었다는 창건 설화가 전해진다. 이 설화에 따라 절 이름을 '신이 흥하게 한 절'이라는 뜻의 신흥사(神興寺)라 하였다.
날씨가 점입가경이었다. 비가 내리고 갠 하늘이 아주 투명했다. 멀리로 보이는 케이블카를 보면서 꿈에 부풀고 구름이라도 타고 갈 기분이 되었다. 정말로 케이블카가 구름까지 도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도 건졌다. 빨리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서 권금성 쪽으로 가 보고 싶었다. 권금성은 또 역사적 장소 아닌가?
몇년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다같이 설악산에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권금성 다녀 오는 길에 아내가 잠시 눈 앞에 안 보이길래 "소은 엄마~~" 하고 불렀는데, 아버님이 " 안 들린다 김서방"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소은이랑 송하가 한참 동안 그 말투를 따라 하곤 했었다. 김서방이란 말이 재미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억양을 재미있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에 케이블카 타고 권금성 가서 아이들하고 그걸 한번 더 해보고 싶었다.
주요 명소 안내도를 사뿐히 즈려 밟고 반달 가슴곰 동상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우리 가족은 설악산에 오면 늘 사진 찍어 두어야 하는 인증샷 장소인 것처럼 빼놓지 않고 여기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여기서 찍은 사진만 모아서 보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문제는 어떻게 모으느냐겠지만.
이 동상만 보면 어쩌면 설악산의 대표 동물은 반달 가슴곰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설악산문을 지나자마자 사람들이 아주 많이 다니는 길목 중간에 놓여 있는 동상의 소재로 이 동물을 선택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게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케데헌(애니메이션 K-Pop Demonhunters의 약자)을 비롯한 K-culture 영향 때문인지 설악산에도 외국인이 눈에 띠게 많이 보였다. 설악산에 처음 와서 이 반달 가슴곰 동상을 본 외국인들은 아마도 틀림 없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런데 설악산의 반달가슴곰은 1983년 설악산 마등령에서 밀렵꾼의 총에 맞아 숨진 이후로 더 이상 발견되지 않으며, 그 사건 이후 설악산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설악산 입구에 세워져 있던 이 반달가슴곰 조형물이 2004년경에는 설악산의 상징 동물로 여겨지는 산양 조형물로 교체되기도 했다고 한다.
오가는 길에 귀여운 산양 조형물을 보았는데 얼마 전 스위스 필라투스산에서 직접 본 산양 때문인지 더 정겹게 느껴졌다. 필라투스 정상에서 케이블카 타러 가던 길에 우연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 바로 앞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산양을 한참 동안 지켜 본 적이 있었다. 설악산은 필라투스 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차례 방문했지만 반달가슴곰은 물론이고 산양도 보지 못했다.
※ 환경부는 멸종위기에 놓인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기 위해 2004년부터 러시아 연해주 등에서 들여온 반달가슴곰을 지리산에 방사하는 복원 사업을 시작했고 이 사업은 현재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개체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리산에서 복원 개체 수가 안정화되면 장기적으로는 백두대간 전체로 서식지를 확대할 계획으로 설악산이나 오대산 등에도 방사를 검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지만 현재까지 설악산에 공식적인 복원 사업으로 반달가슴곰이 방사되지는 않았다.
다른 분들이 촬영에 몰두하고 계셔서 잠시 대기하다가 우리도 인증샷을 찍었다. 곰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서서 찍는 게 국룰인것 같았다. 모여서 찍자는 말에 아내가 웃으며 벌려서 찍어야 한다고 점잖게 타일렀다.
반달가슴곰을 지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아이들이 강렬한 눈빛을 보냈지만 일단 케이블카 탑승 상황 점검이 필요했다. 거기서 일단 티켓을 사야 나머지 일정을 순조롭게 계획하고 운영할 수 있다. 이건 다년간의 설악산 행을 통해 내가 터득한 원칙이자 노하우다. 거기가 'Critical Path Method'의 소위 임계구간(Critical Path)이자 병목 구간이기 때문에 거기를 일단 해결해야 일정 최적화가 가능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당 탑승 인원이 제한적인 병목 활동이므로, 수요가 몰릴 경우 후속 활동을 위한 여유 시간(Slack)이 즉시 소멸된다. 둘째, 티켓 확보가 실패하거나 대기 시간이 길어질 경우, 후속 활동의 시작이 불가능해져 전체 일정의 최소 소요 시간(임계 경로)이 직접적으로 지연된다. 셋째, 강풍 등 날씨 상황에 따라 운행이 예고 없이 중단될 수 있는 외부 위험이 크므로, 티켓을 확보해야만 당일 일정의 확정적인 시작을 보장받을 수 있다.
※ 임계 경로 기법(Critical Path Method, CPM)은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데 필요한 가장 긴 일련의 작업 순서(임계 경로)를 파악하여 최소 프로젝트 기간을 결정하는 프로젝트 관리 기법이다. 이 경로상의 활동이 지연되면 곧바로 전체 프로젝트가 지연되므로, 이들 임계 활동을 우선적으로 관리하고 처리해야 한다. 설악산 여행에서 케이블카 탑승은 전형적인 임계 활동(Critical Activity)이자 병목 활동(Bottleneck Activity)으로 볼 수 있다.
서둘러 케이블카 매표소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매진 행렬이었다. 가장 빠른 출발이 오후 5시가 넘었다. '5시까지 여기서 다른 곳을 방문하고 그 때 케이블카를 탄다.' 설악산 내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 했다.
체력적으로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다들 전에 한번 타보기도 했고 케이블카 말고도 할만한 일이 많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다른 목적지를 찾아 나섰다.
일단 케이블카 때문에 잠시 미뤄 둔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벌집 아이스크림인가 하는 명칭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기자가 여러 명 있고 외국인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데 번호 부르는 직원의 목청이 아주 대단했다. 장사가 잘 되어서 신이 난 모양이었다.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가게 옆으로 꽤 넓은 공간과 좌석들이 있었는데, 모두들 가방 하나 둘 걸쳐 놓고 자리들을 차지하고 있었다. 힘드신 어르신들 때문에 날쌔게 아이들과 함께 움직여 봤지만 확보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되는 대로 먼저 앉았다. 의자를 찾아서 더 놓으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가격대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흑임자 아이스크림을 시켰는데 그 중 거의 최고가여서 아내에게 한소리 들었다. "제일 비싼 걸 골랐네."
길쭉이 호떡 이란 것도 같이 주문했다. 아침 먹은지 얼마 안된 시간인데도 조금 움직였다고 벌써 약간의 출출함이 생겨 달달한게 땡겼다. 여행 나오면 잘 먹어 둬야 한다는 자기 합리화도 한 몫했다.
잠깐의 휴식과 적절한 당분 섭취로 기운이 났다. 다음 목적지는 비룡폭포로 정했다. 지난번에 그 쪽 코스가 완만하고 평탄했던 기억이 있었다. 비가 약간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주도 '사려니 숲길'만큼은 아니어도 약간 규모가 작은 '비자림' 느낌이 나는 산책하기 좋은 길이었다.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길이 완만하고 부담 없이 걷기 좋았다.
가는 길에 바라보면서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케이블카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안 들린다 김서방'은 당분간 산 속에 묻어 두기로 했다.
산 입구 쪽으로 다시 조금 내려와서 비룡폭포 가는 길을 찾았다. 그런데 예전에 갔던 길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계곡으로 내려가서 "이제 여기서부터는 수영해서 건너자"고 시덥잖은 농담을 하고는 다시 길을 찾았는데,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 있는 계곡이 아주 시원했다.
백담사 가는 계곡 느낌이 났다. 여기나 거기나 같은 설악이니 분위기가 아주 비슷할 수밖에 없겠다 싶기는 하다. 산 위 쪽 멀리로 케이블카가 아스라히 보였다. 여기는 아마도 늘 케이블카 위에서 바라보던 풍경이던 곳인 것 같은데 이제는 반대로 여기서 케이블카를 바라보니 느낌이 묘했다.
중간에 표지판을 보고는 남몰래 반가웠다. 혹시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았나 하는 남모르는 걱정이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일행이 많고 기동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동 경로 오류는 치명적이다.
날씨가 궂고 비 예보가 많아서 어르신들이 모자와 선글라스를 안 챙겨 오셨다고 했다. 마침 차에 선글라스가 하나 더 있어서 드렸는데 아버님께 아주 잘 어울렸다. 아내가 자주 쓰던 빨간 모자도 요긴했다.
여행 인솔자에게는 항상 넉넉한 준비물이 필요하다. 한번도 사용 안하고 그대로 가져가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언제 뭐가 필요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다 이런 순간이 오면 아주 흐뭇하고 뿌듯해진다.
가다가 아버님께서 나무에게 진한 애정 표현을 하셨다. 나무 둘레를 재보려고 하신 건지 나무의 정기를 받으려고 하신 건지 이유는 잘 몰랐지만, 아이들이 재미있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무가 조금 놀랐을 것 같았다.
※ 등산객들이 나무를 끌어안는 모습은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흔히 '트리 허깅(Tree Hugging)'이라 불리는 이 행동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심리적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나무의 묵직하고 변함없는 존재감에 기대어 스트레스와 불안을 덜어내고, 나무가 방출하는 피톤치드를 깊이 마시면서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고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맨손으로 나무를 접촉하는 행위는 자연과의 교감이자 '어싱(Earthing)'의 일환으로, 힘든 등산 중 나무에 기대면 몸의 하중을 분산시켜 근육의 긴장을 풀고 피로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계곡 길을 지나서 산길로 접어드니 길이 조금 험해졌다. 아내도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날은 아무 얘기 안했지만 이쯤 되면 진실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지난번에 갔던 평탄한 길은 비룡폭포 가는 길이 아니고 아마 비선대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신흥사 지나서 흔들바위 가는 코스 말고 중간에 비선대로 빠지는 길로 갔었던 걸 아예 처음부터 신흥사 쪽으로 가지 않고 비룡폭포 가는 길로 갔다고 착각한 듯하다.
글자 수도 다르고 하나는 폭포고 다른 하나는 무슨 '~대'인데 그걸 헷갈리다니... 앞 글자가 같은 '비~'라고 그걸 헷갈리나... 쯔쯔...
점점 길이 험해지니 어머니가 조금씩 자세가 낮아지시고 힘든 기색이 보였다. 중간에 화장실이 나와서 급한 용무들을 해결하던 중에 등산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중년의 일행과 마주쳤다.
"여기부터 비룡폭포까지 길이 어떤가요?" 물으니, 우리 일행을 한번 둘러보고는 "음... 여기서 한참 멀거나 아주 험하지는 않은데, ...어르신이 가시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 있어요."
※ 비룡폭포(飛龍瀑布)는 설악산 외설악 지역 토왕골에 위치한 폭포로, 물줄기의 우렁찬 소리가 마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폭포수 속에 살던 용에게 처녀를 바쳐 가뭄을 면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높이는 약 16m이며, 하류의 육담폭포와 함께 명승 제95호로 지정된 설악산의 주요 경관 중 하나이다. 비룡폭포를 지나면 거대한 토왕성폭포 전망대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길이 시작된다.
빠르게 상황 판단을 했다.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비룡폭포가 뭐라고... 발걸음을 돌려 신흥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계곡을 배경으로 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자는 시의적절한 제안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품앗이로 사진 한 장 찍어드리고, 이번 여행에서 몇 안 되는 멋진 전체 일행 사진을 하나 건졌다.
멀리로 울산바위가 보이는 곳이었다. 여기서 보는 울산바위는 리조트에서 보이는 방향과는 아마 반대 방향일 것이다. 울산바위 전망으로 유명한 리조트에서 날씨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결국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울산바위를 이렇게 뒷모습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자신 있는 신흥사로 향했다. 작년에도 한번 왔고 신흥사야말로 설악산에서 내게 가장 익숙한 곳이다. 통일대불까지 그리 멀지도 않으니 가서 좀 앉아서 쉬어야겠다 생각하고 논스톱으로 달렸다.
가톨릭이지만 우리 어르신들은 불교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시다. 오대산 월정사에 모두 함께 간 적도 있고, 관광지에 유명 사찰이 있으면 아주 흐뭇하게 잘 다녀주신다. 하긴 나도 여행 가서 성당 가는 데 거부감이 전혀 없다. 나중에 가장 멋진 사진이 남는 곳은 성당 앞인 경우가 많았다.
전주 한옥마을 갔을 때도 한옥집 앞에서 찍은 사진은 잘 기억이 안 나고 전동성당 앞 사진이 뇌리에 오래 남았다. 프랑스 여행 중에도 몽마르트 언덕 위 사크레쾨르 성당 안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통일대불 앞에서 잠시 앉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청록빛이 더 진해지고 바래지는 느낌이었다.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통일 얘기에 대해서 말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래서 빛깔이 더 바래져 보이는 걸까?
※설악산 통일대불은 신흥사 입구에 위치한 높이 14.6m(좌대 포함 시 약 18m)의 거대한 청동 불상이다. 1987년 착공하여 1997년에 완성되었으며,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아 '통일대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불상은 결가부좌(가부좌)를 하고 좌대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청동 108톤이 사용되었으며, 불상 주변에는 사천왕상과 12지신상도 함께 조성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손녀들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셨다. 송하가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그걸 또 열심히 듣고 계신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다.
우리 소은이랑 송하는 어른들에게 아주 상냥하다. 그냥 단순히 예의를 갖추는 수준이 아니라 진심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주 훌륭한 아이들이다.
불전함에 불전도 조금 넣었다. 소은이가 약간 어색해하면서 조심스럽게 불전함 앞으로 다가갔다. 너무 큰 부담만 아니라면 나는 이런 것에 그렇게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곳에 이런 시설을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약간의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 입장료도 없이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 덕에 복이라도 조금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겠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일단 본인의 정서를 가꿔줄 테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서는 소은이가 그 복을 대표로 받았다.
통일대불을 떠나 입구쪽으로 내려가다가 날씨랑 풍경이 너무 아깝다는 아내의 '통찰력 있는 순간 멈춤'으로 멋진 한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서둘러 떠나려 하는가... 이 좋은 날씨와 풍광을 좀 더 누려보면 그 아니 좋은가...
멀리 설악산과 하늘의 구름, 그리고 파란... 너무나 파란 하늘빛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뒤에서 바라보는 내가 더 좋았다.
저녁 식사 전에 영금정에 들렀다. 속초에 여러번 왔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었다. 도착 막바지에 차가 꽤 많이 밀려서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주차장 옆으로 동명항이라고 안내판이 보였다.
동명항이라면 수년전에 어르신들과 함께 온 기억이 있는 곳이다. 아내는 전혀 기억을 못했다. 다행히 아버님이 기억을 하셔서 기억력 대결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영금정 옆으로 바닷가 쪽에 길게 방파제가 있고 그 위로 둑길이 나 있었다. 영금정에서 바다 구경하러 간다고 하니까 아내는 모래 사장이 있는 바닷가를 상상했다고 했다. 모래 사장은 내일 오전에 리조트 앞 바닷가로 가서 보자고 달랬는데 다음 날은 비가 내려서 결국 못갔다. 역시 여행지에서 내일은 없다.
방파제 옆에 쌓인 테크라포드(Tetrapod)를 보고 소은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너무 위험해 보이고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언젠가 나도 그 속에 잘못 빠지면 아주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규모가 꽤 커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무겁고 실수로 한번 잘못 들어가면 빠져 나오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라고 한다.
※ 테트라포드는 일반 중형이 약 20톤, 대형은 80톤 이상의 무게를 가지며, 실제 크기는 성인의 키를 훨씬 넘는 3~5m다. 여러 개가 겹쳐 쌓이면 높이가 10m 이상이 되기도 한다. 사이로 추락하면 표면이 매우 미끄럽고 복잡한 내부 구조 때문에 자력 탈출이 거의 불가능하며, 구조 요원도 위치 특정이 어려워 구조가 매우 힘들다. 매년 100여 명이 추락 사고를 당하고 그중 20명 이상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0년부터는 항만법 개정으로 출입 금지 구역 진입 시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방파제 둑길이 바닷가 쪽으로 꽤 길게 펼쳐져 있었지만 우리는 멀리까지 가지는 않고 가까이에서 사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거기서도 충분히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둑길에서 나와 주 목적지인 영금정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짝을 이뤄 먼저 앞으로 나서 한참 걸어 갔는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잠시 기다리면서 안내판을 읽어보니 영금정의 유래에 얽힌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뜻밖에 방파제와 정자에 얽힌 아련하면서도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 영금정(靈琴亭)은 파도가 암벽을 치면서 신령한 거문고 소리를 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원래 이곳에는 높은 바위산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말 속초항과 동명항의 방파제 건설을 위해 폭파되면서 원래의 지형과 신비한 거문고 소리가 사라졌다. 이를 안타까워한 속초 주민들이 1997년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바위 위에 해돋이 정자를 건립했으며, 2017년에 전면 재건축되었다.
영금정에는 정자가 두 개 있다. 그 중 하나인 바다 위 정자는 '해돋이 정자'로 동명해교(東明海橋)라는 약 50m 길이의 다리를 건너서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정자는 '정자 전망대'라고 불리는데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했다. 계단이 부담스러운 우리는 정자 전망대는 가지 않고 해돋이 정자로 바로 향했다.
바닷바람이 아주 상쾌했다.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와 바위섬에 모여 앉은 바다새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잠시 동안 각자의 상념에 빠졌다.
그랑블루라는 영화가 있었다. 주인공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잠수하려다가 나중에 아예 돌아오지 않는 곳으로 영영 떠나버리는 이야기. 동성애를 상징하는 이야기라고도 하고 내용이 약간 지루한 듯도 한데, 이상한 끌림이 있어서 두세 번 다시 본 영화였다.
※그랑블루(Le Grand Bleu, 1988)는 뤽 베송(Luc Besson) 감독의 작품으로, 실존 프리다이빙 챔피언 자크 마욜(Jacques Mayol)을 모델로 한 영화다. 바다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인간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이 결국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결말로, 자유와 본능,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근원에 대한 은유로 해석된다.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인간의 본능은 엄마 뱃속, 그리고 더 근원적으로는 깊은 바닷속으로 향해 있는 걸까? 사람들은 바닷가 같은 곳에 오면 왜 말수가 적어질까? 먼 옛날 진화의 흔적인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
송하의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잠깐의 엉뚱한 망상에서 깨어났다.
알찬 하루를 꽉찬 홍게살을 먹으며 마무리하러 갔다. 벌써 10년 이상 된 단골집, 바로 그 홍게집으로... 상호는 365 홍게대게 공판장이라는 곳인데 좀처럼 입에 붙지 않는 다. 10년쯤 전에 아내가 어디선가 검색해서 찾아가게 된 곳인데 처음에는 정식 건물도 아니고 가건물 같은 곳에 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이거 먹으러 속초에 일부러 오고 싶을 정도였다. 특히 마지막 홍게라면은 거의 중독을 야기하는 수준이다.
형편이 나아졌는지 속초 이마트 옆으로 와서 정식 가게를 오픈하고 나서는 옛날의 그 추억이나 풍미가 약간 퇴색된 감이 있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몇 해 전에는 새로운 곳에 도전하는 무모한 시도도 있었다. 바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백종원과 함께 찍은 사진이 초기부터 걸려 있었는데 이제는 그만 떼시는 게 어떤가 싶었다. 요즘의 백종원은 구설수가 너무 많아서 플러스 효과보다 마이너스가 더 크지 않을까? 아주머니 혼자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듯한 표정도 좀 어색하다.
5시쯤 도착했는데 알아보는 듯 마는 듯한 반응을 보여주셨다. 나름대로 단골인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일까? 그래도 속초 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오는데 살짝 서운했다. 나중에 계산할 때 몇가지 할인을 해주시기는 했다.
이곳에서는 또 하나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이 집에는 늦둥이 아들이 하나 있는데 (백종원 사진 참조) 아주 붙임성이 좋은 녀석이다. 이마트 옆으로 오기 전 가건물 시절에 우리가 가면 아이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함께 하곤 했다.
한번은 성훈이네랑 같이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성훈이랑 아마 동갑인 걸로 기억한다) 자기 홈그라운드라 그런지 너무 활달하고 자신만만한 게 성훈이가 왠지 약간 기가 눌리는 듯한 상황이었다.
그때 우리 송하의 재치가 빛을 발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난 세상에서 성훈이 오빠가 제일 좋아."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몇 수를 내다본 건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나는 아직도 신기하다.
이 홍게 집의 한 가지 단점이라면 요리에 약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 예약을 하고 오라고 하는데 양을 정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오곤 한다. 이날도 예약 없이 그냥 왔다.
오래 기다려야 해서 그런지 여기는 미역국과 밑반찬이 정말 맛있다. 요즘에 아이들이 생선살이 둥둥 들어간 미역국에 완전히 꽂혀 있는데 여기서 주는 미역국도 바로 그 미역국이다. 미역국 한 동이를 허겁지겁 들이키고 각종 밑반찬 접시를 싹싹 비우며 홍게를 간절히 기다렸다.
명불허전이었다. 수십 번 왔지만 그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었다. 홍게 5마리를 순삭하고 게뚜껑밥도 네 개나 시켜서 홍게라면까지 깡그리 해치웠다. 아주머니가 세 개면 된다고 한 게뚜껑밥을 네 개 시켜서 살짝 버거웠지만 거의 남기지 않았다.
나오면서 아저씨에게 오늘따라 왜 이리 맛있는지 물었다. 거진에서 물건을 해오셨다고 했다. 거진 물건이 원래 좋기로 유명한데 이번에는 거기서 물건을 해왔다고... 북한하고 번갈아 들어가는 지역인데 11월에는 더 좋을 거라고...알듯말듯한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가 북한하고 그런 협정이 있나?
※ 강원도 고성군의 거진항은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주요 어항으로, 북방한계선(NLL)과 가까운 청정 해역에서 잡힌 명태, 대구, 오징어, 홍게 등으로 유명하다. 현재 남북한 사이에 수산물을 '번갈아 들어가며' 조업하는 공식 협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2017년)에 따라 북한산 수산물은 수출 금지 품목이며, 한국 정부도 이를 준수하고 있다. 아저씨의 발언은 ①거진항 수산물이 북방한계선 인근의 청정 어장에서 나온다는 지리적 이점을 강조하거나, ②동해상의 특정 어장이 남북 수역 경계와 가까워 최상급 어획물을 의미하는 현지 어민들의 관행적 표현, 혹은 ③과거 상황이나 비공식적 유통 경로에 대한 추측성 언급으로 보인다.
7~8월에는 금어기라서 홍게가 나기는 하는데 잡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 제대로 몰랐다. 7월 초까지는 그 전에 들여온 물건이 있어서 와도 된다고 아저씨가 혹여 안 올까 걱정 말씀을 하셨다. 여름 휴가철엔 약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확인해 보니 실제로 홍게(붉은대게)의 금어기는 7월 11일부터 8월 10일까지이고 암컷은 연중 포획 금지였다. 금어기 직전인 7월 초까지는 그 이전에 잡아 냉동 또는 활어 상태로 보관한 물량을 판매할 수 있어, 여름철에도 홍게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여행 3일차,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어제와는 달리 날이 잔뜩 흐리고 비가 내렸다. 요정의 마법이 하루가 지나니 힘이 부친 모양이었다.
요즘은 별도로 로비 카운터에 갈 필요 없이 온라인으로 체크아웃이 가능해져서 짐만 챙겨 차에 싣고는 아침을 먹으러 갔다. 울산바위가 보이는 리조트 10층의 엠브로시아(Ambrosia) 카페에서 멋진 뷰를 보면서 아침을 즐기고 싶었는데 구름에 가려 울산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틀 내내 맛있는 한식 요리를 먹었으니 하루쯤 베이커리에서 커피, 주스와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송하가 이름 붙인 '빵빵이'를 잔뜩 주문해서 음료수랑 같이 즐겼다. 송하는 이런 이름 붙이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남이섬에서 벼농사 짓는 곳이 보이기에 송하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한 포기 잘라 주었더니 '김벼벼' 씨라고 이름을 붙였다. 빵빵이는 성씨가 뭔지 궁금한데 아직 송하가 알려주지는 않았다.
어제 하루 여기저기 많이 다녀서 그런지 아침에 다들 조금 피곤해 보였고 말수가 적었다. 표정만 보면 너무 진지한데 사실 기분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여행 오기 전에 아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한 곳은 대관령 삼양목장이었다. 가족들과 여러 번 간 곳인데 거기서 동물들 구경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런데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양떼몰이 공연이나 먹이 주기 행사 같은 건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혹시.. 했는데, 전화로 확인해 보고는 순순히 포기했다.
아버님 의견은 낙산사였다. 월정사 전나무 숲, 백담사 계곡, 대관령 삼양목장 등과 함께 후보로 오른 곳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못 가보신 곳이라고 해서 단연 유력 후보지로 떠올랐다. 아이들과 우리 부부는 여러 번 다녀왔지만 길도 좋고 거리도 가까워서 결정이 어렵지 않았다.
주차장에는 생각보다 차가 꽤 있었다. 비 오는날의 산사는 나름의 향기가 있다. 사람들 생각이 다들 비슷한 것 같다.
정문에는 관음성지낙산사(觀音聖地洛山寺)라고 적혀 있었다. 아버님이 궁금해 하셔서 바닷가에 있는 '해수 관음상'이 유명한 절이고 관세음보살을 중요하게 모시고 있는 절이라고 설명해 드렸다.
※낙산사(洛山寺)는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에 위치한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관음성지(觀音聖地)'라는 이름답게 관세음보살이 직접 현신(나타남)한 성지로 알려져 있으며,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특히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변 바위 위에 세워진 높이 16m의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이 유명하다. 의상대, 홍련암(보물), 7층 석탑(보물)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번에 올 때만 해도 공사 중이던 곳들이 이제 말끔히 공사를 마치고 멋지게 꾸며져 있었다. 특히 곤지암의 화담숲이 연상되는 지그재그식 오르막길이 비 오는 날의 정취와 어우러져 아주 느낌이 좋았다. 조금씩 떨어져서 오르다가 가족들을 만나는 광경 자체가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머니 표정이 특히 밝아 보였다.
낙산사 화재는 그 자체로는 불행한 사건이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그 이후 오히려 절이 더 멋져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의 남대문 화재부터 낙산사 화재는 물론이고 고궁 방문 시에도 곳곳에 화재의 기억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아팠는데, 그걸 계기로 잘 복원해 나가면 오히려 더 나아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2005년 4월 4일 밤, 강원도 양양군 일대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이 다음날인 4월 5일 낙산사를 덮쳐 보물 제479호인 동종(銅鐘)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신라 문무왕 11년(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래 1300여 년을 이어온 천년 고찰의 보물급 문화재들—원통보전, 범종각 등—이 불타 없어졌다. 다만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은 당시 주지스님과 사부대중의 노력으로 미리 옮겨져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후 정부와 불교계, 시민들의 성금과 노력으로 대대적인 복원 사업이 진행되어 2007년 4월 5일 주요 복원이 완료되었고, 2009년까지 추가 건물들이 신축되었다. 복원 과정에서 전통 건축 양식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현대적 조경과 편의시설, 화재 방지 시설을 갖추어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아름다운 사찰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옆으로 자그마한 돌탑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이라고 쓰여진 곳을 지났다. 그리 험하지 않은 길이었지만 어머니가 체력이 조금 부치셨다. 평소에 가족들이 조금 더 신경써서 다리 근력을 키워 드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수관음상에 도착했는데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얼른 벤치를 찾아 갔다. 나는 아버님, 소은이랑 같이 종을 한번 쳐 봤는데 그리 감동적인 소리는 아니고 그냥 종이었다.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 범종각(梵鐘閣)의 종(鐘)'이라고 부른다는데 그야말로 평범한 종이라는 뜻인 것 같았다.
낙산사에는 원래 보물 제479호로 지정되었던 조선시대 동종이 있었으나, 2005년 산불로 소실되어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고, 2006년에 새로 주조하여 복원했다고 한다. 원통보전 쪽에 복원된 종이 있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그래도 꽤 먼 길을 힘내서 걸어 주셔서 해수관음상까지 올 수 있었다. 아이들도 많이 지쳐서 바다가 보이는 곳에 멈춰 잠시 쉬었다. 아내가 더 기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족들이 다 같이 힘내서 이룬 작은 성취였다.
빗줄기도 많이 약해지고 바닷 바람이 상쾌해서 심호흡을 여러번 했다. 여러번에 걸쳐서 오는 곳이지만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었다.
옆으로 어떤 스님의 조각상 같은 것이 있었다. 무산스님이라는 분의 채색 조각상이었는데 날씨가 궂어서 어떤 분인지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다. 나는 괜히 장난기가 발동해서 철 없이 옆에 앉아 같은 포즈로 다리를 꼬고는 사진을 찍었다.
※ 무산 조오현 스님(1932-2018)은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에서 활동한 승려이자 시조시인이다. 1968년 시조시인으로 등단하여 『아득한 성자』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90년 설악산 신흥사 조실에 추대된 후 사찰 중창불사와 포교 활동에 힘썼으며,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현대에 되살리는 데 헌신했다. 만해가 『님의 침묵』을 집필했던 백담사를 중심으로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조직하고(1996) 만해축전을 시작(1999)했으며, 문예지 『유심』을 복간(2001)하고 만해마을을 조성(2003)하는 등 만해의 정신 계승에 앞장섰다. 2018년 5월 입적했다.
나의 철없음과는 달리 아버님은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측은해 보였는지 수건으로 닦아주고 계셨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마음쓰심을 보고 감탄했다.
※ 해수관음상 앞에 스님의 좌상과 부도탑이 조성된 것은 불교계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일반적으로 부도탑은 사찰 외곽의 별도 공간에 세우는데, 2005년 대형 산불로 낙산사가 폐허가 되었을 때 조실로서 복원을 이끈 스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2023년 5주기에 이곳에 모셔졌다고 한다.
관음전으로 내려갔다. 관음전은 해수관음상 정면 조금 아래에 있는 작은 법당인데, 내부에는 따로 불상이 없고 불상이 있을 자리에 통창(창문)이 나 있어서 그 창을 통해 밖에 있는 해수관음상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의 법당이다.
거기서 잠시 다리를 펴고 차분한 시간을 보냈다. 종교적인 신념 같은게 아니더라도 법당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는 순간이 온다. 이 날은 특히 그런 순간이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에게 잠시 찾아온 것 같았다.
옆에 놓인 법요집을 잠시 펼쳐서 여기저기 넘겨보다가 반야심경에서 시선이 멈췄다. 이 법요집에는 한글로 번역된 반야심경도 같이 적혀 있었다. 아내가 유심히 보더니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반야심경 글귀가 참 좋다는 말과 함께..
우리 집에서 제사 지낼 때 쓰던 병풍에도 반야심경이 쓰여 있다. 큰 외삼촌께서 쓰신 글씨인데 한자로 된 원문 그대로를 써서 한폭 선물로 주셨다. 한 때 책도 보고 유튜브로 나오는 해설도 많이 봤지만 그 뜻을 다 헤아리기는 쉽지 않았다. 대승불교의 핵심이 요약되어 있는 소이경전(小而經典)이라고 하는데 어찌 쉬울 수가 있으리.
※ 불교의 반야심경은 다른 종교의 핵심 기도문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 기독교로 치면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에 해당하고, 카톨릭으로는 성모송(Ave Maria) 또는 묵주기도와 유사하다. 모두 짧지만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으며, 신자들이 일상적으로 암송하고, 예배나 기도 시 반복적으로 염송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따와나 선원처럼 초기불교 전통을 따르는 곳에서는 반야심경 대신 자애경(慈愛經, Metta Sutta)이나 전법경(轉法經)을 읽는다.
관음전을 나와 해수관음상 앞에 섰다. 비도 서서히 그치는 듯하고 기분이 상쾌했다. 몸은 조금 피곤하고 날씨도 궂었지만 시원한 바람과 은은한 바다 내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듯했다.
낙산사에는 해수관음상과 관음전 외에도 동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들이 많이 있다.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낙산사의 중심 건물로,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로부터 산 정상에 대나무 한 쌍이 솟아난 곳에 불전을 지으라는 계시를 받고 세운 곳이다. 내부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이 모셔져 있으며, 원래 건물은 2005년 화재로 전소되어 2007년 복원되었다.
해안 절벽 위에 지은 정자이자 동해안 일출 명소인 의상대는 의상대사가 좌선 수행을 한 곳으로 관동팔경 중 하나이다. 의상대에서 200m쯤 북쪽 바닷가로 가면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곳이자 낙산사 창건의 모태가 된 홍련암이 있는데, 이는 법당마루 밑으로 출렁이는 바닷물을 볼 수 있게 절벽 위에 세워진 암자다.
※ 낙산사 원통보전(圓通寶殿) 앞마당에는 신라 때 세워진 3층 탑을 조선 세조 13년(1467년)에 7층으로 다시 조성한 낙산사 칠층석탑이 있으며,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관음보살(觀音菩薩)로부터 받은 수정 염주와 여의주를 봉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 구역으로 가는 길목에는 7관음상(七觀音像), 32응신상(三十二應身像), 1500관음상(千五百觀音像) 등 수많은 관음상을 봉안한 보타전(普陀殿)이 있어 다양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동해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뜻의 빈일루(賓日樓)는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지나 원통보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으며, 누각 아래를 통과하여 사찰의 중심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해수관음상에서 의상대 쪽으로 내려가 볼까 하다가 체력적으로 무리라 생각해서 출구로 다시 향했다. 욕심을 부리자면 한이 없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점심 먹을 장소를 급히 물색했는데 아내와 내가 거의 동시에 같은 식당을 찾아냈다. 낙산전주식당이라는 곳이었다.
양양 낙산사 앞인데 전주 식당?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평판이 워낙 좋았다. 식당 앞에 주차 할 공간도 마침 있어서 비오는 날씨에 제격이었다. 주문하려고 메뉴판을 살피는데 생선구이,제육볶음, 오징어 볶음 이런 친근한 음식이 눈에 띄었다. 2인분씩 세가지를 주문하려고 아내에게 눈빛을 보내니 아내가 엄지척을 했다.
조금 숨을 돌리고 찬찬히 둘러 보니 물곰탕하고 대구탕으로 유명한 집인 것 같았다. 주인에게 물었더니 그 두가지는 이미 품절이었다. 그래 물곰탕... 왠지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으니 그냥 대중적인 주문으로 밀어 붙였다.
오징어 살이 통통하고 생선도 아주 바삭한게 푸짐했다. 나중에 낙산사 가면 고민 없이 다시 들르고 싶은 식당이었다.
바깥 쪽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관광 마차'가 보였다. 아이들 중 누군가가 "저거 진짜 말이야?"라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한참 생각했다. "그럼 저게 진짜 말이 아니고 가짜 말?"
아이들이 갑자기 신이 났다. 왜 그리 동물을 좋아하는지 막상 옆에 가면 무서워서 잘 만져 보지도 못하면서.. "한번 타볼래? " 하면 또 싫다고 한다. 알수 없는 아이들이다.
낙산사 마차가 나름 낙산사의 유명 관광 상품인것 같았다. 이번에 처음 봤는데 꽤 여러대의 마차가 있었다. 비만 안 왔으면 한번 타 볼뻔했다.
마차와도 작별하고 우리는 집으로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 보다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조금 차들이 분산되는 것 같았다. 아침 뉴스에는 '귀경 행렬 본격 시작' 뭐 이런 무서운 문구가 많았는데 오후로 접어들면서 조금 풀렸던 것 같다.
중간에 한번 정도 휴게소에 머물고 계속 달렸다. 조금 잠이 와서 속초중앙시장에서 산 티각태각인가 하는 무슨 튀김과자를 한봉지 다 끝장 냈다. 낙산사 입구 가게에 '궈가유'라고 쓰인 문구를 보고 잠시 미소 지었는데, 아쉬웠다. 담에는 꼭 '궈와야겠다' 싶었다. 졸음을 깨는데는 오징어가 최고다.
저녁 시간쯤 판교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들어가려 식당 투표를 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또다시 생선횟집이었다. 집 앞에서 최근에 새로 발견한 곳인데 가족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이름이 공교롭게도 '속초 종합어시장' 이었다. 물론 속초점은 아니고 분당서현점이다. 우리는 완전히 속초사랑 가족이 되어 있었다.
지난번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아내와 식구들은 먼저 내려서 번호 대기표를 뽑고 나는 주차하러 내려갔다. 얼마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대기줄이 짧아서 주차하고 돌아오니 벌써 우리 순서였다.
아이들의 미역국 흡입이 시작되고 광어+도미에 도다리세꼬시, 새우구이, 물회 한접시까지 알뜰하게 시켜서 싹 비웠다. 전어회와 오징어튀김은 그래도 자제했다.
든든히 먹고 나니 나른해졌다. 너무 순조롭고 소소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여행이었다. 중간중간 카톡으로 사진을 올리면 실시간으로 즐겁게 반응해 주는 식구들이 있어서 여행이 더 활기찼던 것 같다. 날씨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음번에 꼭 같이 가자' 는 말이 그냥 해보는 인사로 들리지 않았다. 성훈이랑 민주 모두 시험 끝나고 나서 같이 한번 가면 좋을 것 같다.
유럽여행기 보다는 획기적으로 시간이 단축되었지만 그래도 여행기 쓰는게 쉽지만은 않다. 사진 고르고, 없는 글 솜씨에, 희미한 기억력으로 이렇게 써가는게 힘도 들지만 너무 보람차고 즐거워서 내려 놓을 수가 없다.
돌아오고 난 다음날쯤 아내가 조심스럽게 한번 써보라고 했는데 약간의 망설임. 아주 약간의 망설임 후에 바로 또 이렇게 쓰게 되었다. 그로 인해 지난 3일간의 여행 시간은 내 기억 저장 장치 안에서 몇십 몇백 배의 용량을 차지하면서 오래도록 보관될 것이다.
다음 번에는 여행기 공모를 해볼까?
아마 그렇게 하면 그것 때문에 여행 같이 못 가겠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